2020. 06. 10 오후 7:10 꼭 어디 이야기할 데가 없을 때, 아주 가끔 블로그를 찾는 것 같다. 로그인하는데 휴면 계정으로 전환돼 있었다고 해서 놀랐다. 블로그 헤비 유저가 되고 싶다는 꿈도 있었는데, 하여간 작심삼일 어디 가겠나. 개인적인 취미를 함께 하자고 제안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예컨대 '나는 혼자서 이렇게 저렇게 하면서 지내! 너도 같이 할래?' 이런 거. 처음부터 혼자 하는 게 슬픈 일이었다면 사실은 함께 하고 싶은 것이었을 테니까. 대신 처음부터 나의 일이었던 것은 나의 것으로만 두고 싶다. 혼자 있을 때의 나를 그대로 두고 싶다. 스스로 다독여 주어야 할 추한 내 모습을 결코 다른 이에게 내보이고 싶지 않고, 타인과 간절히 함께 하고 싶은 것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
세 달이 훅 지나갔다. 이제 사실상 휴학일기라고 할 것도 없다. 뭔가 감상이나 깨달은 바 같은 것을 좀 써 보려다가, 별로 재미도 감동도 없을 것 같아서 거짓말도 하고 이것저것 섞어서 떠오르는 대로 남기려고 한다. 그리고서 이 글을 마지막으로 휴학일기 카테고리는 마무리를 해야겠다(설마 몇 년 뒤나 언젠가 또 뭔가를 적게 되지는 않겠지? 지금으로선 바라지 않지만 그렇게 된대도 재미있을 것 같다) --- 12시다. 문득 정신을 차려 방 안의 사물을 하나하나 둘러보기 시작했다. 노트북 옆에 있는 그릇에는 식빵 부스러기가 남아있고 그 옆에는 물티슈, 가위, 족집게, 귀이개 같은 것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손에서는 피가 흘러내려 키보드에 찐득하게 들러붙어 있었는데, 아마도 족집게나 손톱깎이 같은 것으로 괜히 ..
‘글을 쓰는 일은 내게 의식을 행하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지금 이 말의 무게에 문득 두려움을 느꼈다. 말을 함으로써, 우리는 특정한 인식으로 사태를 떼어 규명한다. 이는 ‘정체를 밝히는 일’이다. 나의 글쓰기가 그런 정체성으로 귀결되면 어떡하나? 그 말의 의미에 앞으로의 나 역시 종속되면 어떡하나? 그런 걱정이 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생각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지 않으면 도태되고 고여서 썩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생각과 글을 쓰는 일이 같은 내용을 지닌 행위인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요즈음 나는 글을 쓸 때가 돼서야 비로소 마음을 갖춰 정갈하게 생각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글을 쓰는 게 나에게 의식적인 행위라는 생각을 했다. 정리해 보자면, 글을 쓰지 않..
다만 나에게 시간은 그저 유유히 흐르고 있었을 따름이다. 언젠가부터 나 자신은 주어진 조건에 따라 자신을 충동질하는 그 무엇의 정체를 밝히려 시간을 사용하는 이들과 구별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간절히 지키고 싶은 게 별로 없었다. 타인의 삶에서 내게 들여 올 것이 없다고 치부하는 독단과 아집이 나를 세상과 분리시키는 지점이 됐다. 처음에는 그저 나의 것이 아니므로 욕심낼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지만, 언젠가 부터는 허황된 욕망을 혐오하고 무시하는 논리로 탈바꿈됐던 것도 같다. 그 기저에는 분명히, 분명히 어떤 부러움의 감정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말이지…….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마음을 털어버리려는 데서 나온 걸까? 아무튼 이런 생각의 끝에서 나는 그 수많은 ‘나’들을 제거하고 싶다는 감..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왔다. 휴학생이 아니었으면 가지 못했을 것이다 뭐 그런 건 아니지만, 일을 미루고 있다는 죄책감이나 다른 것들에 대한 의무감, 도피 심리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떠났던 것 같다. 뭔가에 치이는 느낌이 많이 사라졌다. 이는 확실히 휴학을 통해 가장 크게 변화된 조건인 것 같다. 여행을 떠나는 동안 이것저것 생각이 나는 대로 고민도 하고 가만히 나 자신을 응시하기도 하고 그랬다. 가면 갈수록 사람들을 더 많이 관찰하게 되는 것 같다. 반드시 목적성을 띠고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 나 자신을 알기 위해서 그러는 것 같다. 그 다음에는?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나에게 주기 위해서? 그런데 이런 과정에서 어떤 혐오의 감정이 나에게 더해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와 타인을 구별하는 것. ..
대의적인 선택을 요구하는 발제를 했다. 나는 나의 이익을 주장하지도 않았고, 실제로 나에게 돌아오는 것도 없었다. 아주 약간씩의 희생이 필요하지만 전체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원한다면 시스템의 초석을 바꾸는 얼마 없는 기회였을 텐데. 아니었을까? 결과가 아무튼 좀 충격적이라면 충격적이었다. 마음에 별로 남지는 않는다. 기대를 계속 저버리게 하니까. 그냥 내 일이나 열심히 해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 뿐이다. 그다지 대단한 일도 아니었지만 이런 걸 겪고 나면 사람들을 믿기가 싫어진다. 내가 무엇에 호소할 수 있을까? 왜 당신들은 인정욕구를 내려놓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사실은 나조차도 이번 발제를 하면서 그런 마음이 있었으면서 선 긋기를 하고 있던 것일까? 누가 지적해줘야 알겠다. 왜냐하면 나..
0.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기 휴학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쉬는 동안 무엇을 할 계획이라고 말하고 다녔었더라. 충동적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거짓은 없었다. 아마도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랬거나 어쨌거나 나로서는 별 상관이 없다. 나는 이제 비의적으로 말하고 행동하기로 했기 때문에, 더 이상 꾸밈없는 말들이 재미있지 않다. 그러려면, 약간은 상관이 없어야 한다. 어느 정도는 멍한 상태로 지내야 한다. 그러면서도 언뜻언뜻 감지되는 것들이 담백하게 진실된 것을 파악할 수 있다면, 이전보다 발걸음 자체가 가벼워졌다는 것을 느끼면서 폴짝폴짝 살아가면 된다. 무슨 뜻이냐면, 반대되는 것들은 경계를 두고 완전히 붙어있다는 소리다. 비약도 없고 거짓도 없이, 소거하고 남은 세계에만 머무른다는 것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