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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기
휴학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쉬는 동안 무엇을 할 계획이라고 말하고 다녔었더라.
충동적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거짓은 없었다. 아마도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랬거나 어쨌거나 나로서는 별 상관이 없다. 나는 이제 비의적으로 말하고 행동하기로 했기 때문에, 더 이상 꾸밈없는 말들이 재미있지 않다. 그러려면, 약간은 상관이 없어야 한다. 어느 정도는 멍한 상태로 지내야 한다. 그러면서도 언뜻언뜻 감지되는 것들이 담백하게 진실된 것을 파악할 수 있다면, 이전보다 발걸음 자체가 가벼워졌다는 것을 느끼면서 폴짝폴짝 살아가면 된다. 무슨 뜻이냐면, 반대되는 것들은 경계를 두고 완전히 붙어있다는 소리다. 비약도 없고 거짓도 없이, 소거하고 남은 세계에만 머무른다는 것은 뒤집어서 말하면 모든 삶의 조건들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좀 더 새롭게 할 것이라는 뜻이다.
(이어쓴다)
다시 읽어봐도 매우 맞는 말이다.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게끔 하는 이들에게 동경을 느낀다. 이제는 보편양식이라는 것을 믿기가 힘들기 때문에, 쉬이 '나는 그와 통했다'라고는 못 하겠다. 단지 동경을 품을 뿐이다. 자신의 양식을 구축하고 있는 사람들. 받아들이는 데 있어 꾸밈이나 거짓이 없음에도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것으로, 그러므로 '아름답게' 바라보는 것. 마치 시詩와 같다.
물론 결심에 이르기까지 오갔던 수많은 생각들을 단번에 퉁쳐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나를 비웃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미리 인정할 수 있다. 나는 그런 척을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마음을 더 많이 가지고 있으며 자각을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렇지만 글의 표면에 떠오르는 의미들은 어쨌든 의식적인 차원의 것일 테니, 더 이상 죄책감을 가지지 않고, 일단 써내려가보려고 하는 것이다.
이어쓰기 시작한 것이 11/1인데, 이제서야 정말 제대로 홀로되고, 모든 것의 책임으로부터 일시적으로 자유로운, 휴休의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알바는 그만뒀고,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기로 정말 작정을 했다. 감각을 닫는 것일까봐 두렵기는 하지만, 그게 아니라 더 예민하면서도 구조화된 무언가를 구축하는 과정이라 믿는다. 나의 언어로, 나의 언어로. 시니피앙끼리 공유를 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통일된 의미를 가지고 살기란 너무 어렵다고 느꼈다. 같은 체계에 속한 사람이더라도 자신의 위치에 따라 구심점이 달라지고, 관계가 달라지고, 그 때문에 사용하는 언어의 의미가 달라진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자꾸 부정하려 들면 안 된다. 나는 많이 부정해왔고, 그 때문에 혼란스럽게 되었다. 남의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공감해주는 척을 너무 많이 했다. 또한 이해받으려는 헛된 시도를 너무, 너무 많이 했다. 이상하게 흐른 한 주가 지나고 이제는 더 이상 외롭지가 않다. 삶에 무너져 휩쓸리고 험악한 기분에 경도되는 일만 없다면,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긴장감 있는 사태를 빚어내고, 이를 글로 결정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근거 없는 기대를 하는 데 이르렀다. 더 이상 설명하기도 힘든, 그냥 내 안에 머무르다 가는 일일 뿐이다. 실패한다면 스러질 뿐. 성공하면 남아서 해독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도. 그 욕망은 매우 큰 것이다. 읽히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이를 자꾸 부정하며 고고한 척을 하면 글의 본질을 흐트러놓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기자신을 드러내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존재의 본성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적인' 본성? 자기기만을 뒤집어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속여서라도 살고 싶다는 것이고, 그 삶은 타자의 인식을 필요로 한다. 존재자 혹은 어떤 법칙? 그것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인간임'이라는 것에 속할 것 같다. 인간의 조건이다.
쓰다보니까 또 삼천포로 흘렀는데, 아무튼 나는 지금 자유롭고 고립된 상태이며 그렇게 거리가 생기고 여러 임의적인 것들이 소거되 이끌리지 않는 상태에서 무엇이 남는지를 탐색하는 중이라는 소리다. 인간이라는 것이 남는 것 같다. 그게 무엇일지, 다시 하나하나 나를 복기해보며 덧씌우고 비교해보고 인식하고 변주해보고, 그러면 재미있을 것 같다. 왜 그게 재미있을 거라고 느끼는지도 알고 싶다.
속뜻까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것이 내가 '주체적으로 살아야겠다'라는 이름을 달았던 이유가 아닐까 싶다. 나를 알고 싶은 이유랄까, 탐구를 해서 내 형식을 갖추고 싶다는 그런 것. 내가 속한 곳으로부터 무엇을 거둬갈지 상상할 수 있는 힘. 나의 그물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
그런 걸 과연 짧다면 짧은 이 기간 안에 알아낼 수 있을까? ...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점점 내가 멍청해져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에 정말 알고 싶다.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나의 형식이 있었던 날들도 있었던 거 같은데, 하고 생각할 때가 있어서 그렇다. 아직 눈에 총기가 있었을 때. 비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믿음이 있었던 시간들이 있었는데... 그냥 나의 착각일까? 요새 멍-하게 보내는 날이 많아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 뿐일까? 개념화함으로써 그냥 안정을 얻고 싶은 것 뿐일까? 이런 의심은 끝이 없다. 단지 나는 인정욕구 하나만으로 똘똘 뭉쳐있을 뿐인가? 보편과 개념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는 없고, 세상에는 사실 역사 그뿐인 게 아닐까? 중력이 있는 요소요소들로 점철된 코드화된 구체적인 세계들에 대해 소박하게 이야기하는 게 전부라면, 가진 게 없는 나는 소박한 것만을 뱉어내다가 지쳐서 아빠의 자리로 물러나게 될 것 같아서, 그게 두려운 것이다. 무게를 지니지 못한 인간은 날아가버리면 되니까. ... 이것은 구차하고 솔직한 심정이고, 언제고 다시 내가 돌아올 자리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일단은 여기까지만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