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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본문 내용과는 1도 관련이 없는 사진. 이번 여행에서 내가 찍은 베스트 컷이라고 생각하는 사진.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왔다. 휴학생이 아니었으면 가지 못했을 것이다 뭐 그런 건 아니지만, 일을 미루고 있다는 죄책감이나 다른 것들에 대한 의무감, 도피 심리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떠났던 것 같다. 뭔가에 치이는 느낌이 많이 사라졌다. 이는 확실히 휴학을 통해 가장 크게 변화된 조건인 것 같다.

 

여행을 떠나는 동안 이것저것 생각이 나는 대로 고민도 하고 가만히 나 자신을 응시하기도 하고 그랬다. 가면 갈수록 사람들을 더 많이 관찰하게 되는 것 같다. 반드시 목적성을 띠고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 나 자신을 알기 위해서 그러는 것 같다. 그 다음에는?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나에게 주기 위해서?

 

그런데 이런 과정에서 어떤 혐오의 감정이 나에게 더해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와 타인을 구별하는 것. 그 과정을 통해서 어떤 가치 판단을 내리고, (대부분의 경우) 단죄하는 것. 때문에 부적절하다고, 부당하다고 취급된 것은 혐오의 대상이 된다. '나는 그게 싫어, 그래서 그렇게 생각하거나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거야.' 이런 태도를 갖게 된다.

 

어떤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을 때. 그래서 타인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가 될 때. 그럴 때 우리는 외로워진다. '다른 시간'이 계속되면 개인은 공동체에 속하지 못하고, 겉돌고, 할 말이 없거나 부정의 감정을 가진 채로 언행을 늘어놓게 된다. '안전하지 못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앞서 나는 '안전하다'라는 것을 '의미의 보호 안에 있다'로 정의했다. 의미라는 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성립되는 것인지에 관해 수많은 논의를 거쳐야겠지만, 일단은 그렇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여기는 상황-소용이 있다거나 내가 그것을 좋다고 혹은 옳다고 여기는 상황-으로 상정하고 이야기를 더 해보자. 그러니까 받아들일 수 없는 무언가를 마주하면 우리는 의미의 보호 속에 있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소용, 효과를 스스로 생산해내지 못하고 그것을 좋아하지도 못하므로 의미에 닿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인간의 본능이며 본질인 것, 진정으로 나라고 할 만한 것을 정신의 작용을 통한 의미의 생산에 두므로, 따라서 '다른 시간'이 계속되면 우리는 스스로의 기능을 행하지 못하고(본능을 추구하지 못하고) 본질을 실현하지 못하는 결과를, 다시 말해 스스로를 상실하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는 형이상학의 체계를 찬찬히 검토해보면 내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생각의 틀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으로서는 철학하는 인간으로서의 내가 정당화하고자 하는 주장은(나의 직관은), 인간은 정신적 존재로서 주어진 물리적 조건으로 인도되는 것 이상의 사고가 가능한 존재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결정론을 부정하고 싶다. 우리에게 주어진 세팅으로 말미암아 오직 가능한 한 가지 미래만이 이미 결정된다는 논지를 반박하고 싶다는 것이다(그런데 이는 인과론과 함께 갈 수 있나? 인과가 존재한다면 전과 후의 사태를 잇는 필연성을 주장하는 것일텐데. 이 부분 정말 생각해봐야겠다). 그러니까 내 입장에서의 자유의지뿐 아니라, 실제로 미래라는 것은 결정돼있지 않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는 소리 즉 기독교에서 말하는 양립가능론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소리다. 아무튼 계속 논점이 번지는데(ㅠ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인간은 자유로운 정신을 지닌 존재라는 소리다. 정신의 작용을 통한 의미의 생산으로 본질의 내용을 정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 수행하는 기능으로서 정의할 수 있는 인간의 본질은 정신의 작용을 통해 의미를 생산하는 것이고, 그 내용을 채워가는 것을 분석하는 게 한 개인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 그 작용 외에 우리는 그 무엇도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 

 

오 너무 머리가 아프다. 이걸 형이상학적 체계와 연관시키려는 것은 무리일까? 나는 관념론-유물론의 틀로까지 연결시키고 싶었는데 그건 이 밤에는 무리인가. 그래서 일단 이 내용은 회색으로 처리하고 그 외로움에 대해서 좀 더 설명을 해야겠다.

 

자기 자신이 스스로로부터 소외된다면, 당연히 외로움을 느낄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조건으로 말미암아 내가 살아갈 수 있는 방식 즉 인간의 실존적 조건으로 정의되는 '나'가 있는데 실제로 현실태의 '나'는 그 조건으로 만들어지는 자리들을 채우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 조건을 소외시키는, 물리치고, 없애려고 하고 그러는 것이다. 그 조건의 존재를 자꾸 승인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 자리는 없앨 수 없기 때문에 공허감은 커지고, 마치 인생에서 그런 것은 절대 채워질 수 없을 것처럼 느끼고, 허무하다고 생각하게 되고. 외롭다는 감정은 그런 소외, 공허, 의미 없음의 감정인 것 같다. 없어지려는 쪽으로의 감정. 채워지지 못하는 쪽으로의 감정. 

 

그래서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 우리는 채울 수 있는 방향으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의미의 생산이라는 것은 그 작동 방식이다.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우리의 정신이 일을 해야 한다. 이를 잘, 좋은 방법을 거쳐 수행하면 질좋은 의미가 생산되고 우리는 그걸로 우리의 실존을 먹여살린다. 실존적 조건과 정신의 관계는 그러한 것 같다(그리고 여기서 다시 형이상학적 논의를 출발시킬 수 있을 것이다). 실존은 우리가 묻지도 따질 수도 없는, 그냥 '주어진 것'이다.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마음의 작용이 발생하는데, 스스로 인지되는 그런 조각조각을 부정하거나 외면하려 들면 자기부정이 발생하는 것. 의미를 사장시키는 식으로. 하지만 절대로 그 자리를 없앨 수는 없으므로 고립되고 그 상태에 묶여있게 된다. 공허함에. 정신은 우리보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으라고 기능의 주체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 작동의 조건, 형식은 실존의 조건에 해당한다. 즉 존재하는 것은 정신(식), 그 형식은 실존(으로 정신 스스로 인지하는 것). 이렇게 말할 수 있나? 아 너무 머리 아프다. 이 부분은 추후 논의를 이어가겠다.

 

어쨌든 타인과 함께하는 상황 속에서 채울 수 있는 방향으로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잘 맞는 사람을 만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사실 나는 안전하지 못한 그런 상황에서 입을 꾹 다물고 그냥 가만 있는 편이다. 그럴수록 힘든 것 같다. 그럴때마다 말을 하고 가능성을 찾으려 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는 건데, 너무 내가 입을 다물고 있었다는 생각도 들고. 아니 사실 고백하자면 내가 너무 완벽을 바라는 것이다. 다를 수밖에 없는데도 말이지...

 

그렇다면 우리는 타인과 함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 것일까? 나는 결국 또 사랑 타령을 할 것 같다. 서로 보는 방향이 다름에도 그냥 이끌릴 때가 있는데. 물론 그 이유가 없지는 않겠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은 워낙 너무 어렵고 어떻게 왜 그렇게 됐는지 알기가 힘들어서 불가항력처럼 느껴지니까 그런 잡다한 것을 그만두고 감정에 집중하게 되는. 그런 상황. 그런 게 동기가 되는 것. 그래서 사랑이 없으면 인간은 멸망이다. 사랑이 없는 것은 불행이다.그렇기 때문에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하지만 사랑에 대해서는 다시 또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우리는 '무엇을' 사랑하는 걸까? 타인을 사랑한다고 했을 때 도대체 무엇을 사랑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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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번 여행을 통해 얻은 것, 배운 점이라면.

 

1. 위의 것들(철학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어떤 '진리 탐구'의 영역)

2. 그 내용을 채워야겠다는 생각. 그 자체가 내용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 그걸 글로 써나가야겠다는 생각(내지는 의지?)

3. 사람들이랑 만나고 하나하나 관찰하고 문제를 발견해 집중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게 많다는 생각, 나에게 새로운 사태를 주는 차원에서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

4. 실제로 그렇게 작동함으로써 그렇게 보이는 것('어떠어떠하다'), 특히 인간의 실제와 이미지의 작동 방식에 나는 관심이 많고 스스로의 것을 가꾸고 싶어한다는 것, 거기에 깃들어있는 고유한 미학에 이야기가 많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라는 예감

5. 더 좋아하는 사람과 여행을 가보고 싶다는 것, 덜 사랑하는 것 같아서 슬프다는 감정, 나에게 계속해서 공허감을 느끼게 하는 무언가가 지금 꽤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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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이 그 자체로 나에게 이런 깨달음을 준 건 아니다. 내가 생각하면서 이런 형식을 자꾸 지었(던 것인지 발견한 것인지)던 것이다. 그래서 더 정신의 작용이 중요한 것이고, 나의 존재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좀 의욕이 다시 솟는다. 염색 눈썹정리 다이어트 이런 것들을 챙겨서 하고 싶어졌고, 피아노도 사진 찍기(이건 함께 했을 때 더 재미있는 일일 거 같다)도 더 열심히 하고 싶다. 책도 열심히 읽고 싶고. 지금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계속 꾸준히 해서 근력을 기르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나 하니까 실제로 실행을 하는 게 중요하다. 다행인 것은 블로그 하는 게 잔근육을 실처럼 길러나가는 것에 해당하는 것 같다는 거. 확실히 '쓴다는 것'은 거울처럼 무언가를 반영하는 게 아니다. 창조적인 행위다. 테크닉에 그치는 것이 절대 아니고, 밥을 먹고 운동을 하는 것 만큼이나 존재성을 지닌 행위인 것 같다. 아무튼 그래서 나를 다독여주고 칭찬해줄 만한 부분인 것 같아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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