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달이 훅 지나갔다. 이제 사실상 휴학일기라고 할 것도 없다. 뭔가 감상이나 깨달은 바 같은 것을 좀 써 보려다가, 별로 재미도 감동도 없을 것 같아서 거짓말도 하고 이것저것 섞어서 떠오르는 대로 남기려고 한다. 그리고서 이 글을 마지막으로 휴학일기 카테고리는 마무리를 해야겠다(설마 몇 년 뒤나 언젠가 또 뭔가를 적게 되지는 않겠지? 지금으로선 바라지 않지만 그렇게 된대도 재미있을 것 같다) --- 12시다. 문득 정신을 차려 방 안의 사물을 하나하나 둘러보기 시작했다. 노트북 옆에 있는 그릇에는 식빵 부스러기가 남아있고 그 옆에는 물티슈, 가위, 족집게, 귀이개 같은 것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손에서는 피가 흘러내려 키보드에 찐득하게 들러붙어 있었는데, 아마도 족집게나 손톱깎이 같은 것으로 괜히 ..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왔다. 휴학생이 아니었으면 가지 못했을 것이다 뭐 그런 건 아니지만, 일을 미루고 있다는 죄책감이나 다른 것들에 대한 의무감, 도피 심리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떠났던 것 같다. 뭔가에 치이는 느낌이 많이 사라졌다. 이는 확실히 휴학을 통해 가장 크게 변화된 조건인 것 같다. 여행을 떠나는 동안 이것저것 생각이 나는 대로 고민도 하고 가만히 나 자신을 응시하기도 하고 그랬다. 가면 갈수록 사람들을 더 많이 관찰하게 되는 것 같다. 반드시 목적성을 띠고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 나 자신을 알기 위해서 그러는 것 같다. 그 다음에는?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나에게 주기 위해서? 그런데 이런 과정에서 어떤 혐오의 감정이 나에게 더해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와 타인을 구별하는 것. ..
0.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기 휴학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쉬는 동안 무엇을 할 계획이라고 말하고 다녔었더라. 충동적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거짓은 없었다. 아마도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랬거나 어쨌거나 나로서는 별 상관이 없다. 나는 이제 비의적으로 말하고 행동하기로 했기 때문에, 더 이상 꾸밈없는 말들이 재미있지 않다. 그러려면, 약간은 상관이 없어야 한다. 어느 정도는 멍한 상태로 지내야 한다. 그러면서도 언뜻언뜻 감지되는 것들이 담백하게 진실된 것을 파악할 수 있다면, 이전보다 발걸음 자체가 가벼워졌다는 것을 느끼면서 폴짝폴짝 살아가면 된다. 무슨 뜻이냐면, 반대되는 것들은 경계를 두고 완전히 붙어있다는 소리다. 비약도 없고 거짓도 없이, 소거하고 남은 세계에만 머무른다는 것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