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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형식/단말마

대화(1)

seelene 2019. 11. 30. 03:40

다만 나에게 시간은 그저 유유히 흐르고 있었을 따름이다. 언젠가부터 나 자신은 주어진 조건에 따라 자신을 충동질하는 그 무엇의 정체를 밝히려 시간을 사용하는 이들과 구별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간절히 지키고 싶은 게 별로 없었다. 타인의 삶에서 내게 들여 올 것이 없다고 치부하는 독단과 아집이 나를 세상과 분리시키는 지점이 됐다. 처음에는 그저 나의 것이 아니므로 욕심낼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지만, 언젠가 부터는 허황된 욕망을 혐오하고 무시하는 논리로 탈바꿈됐던 것도 같다. 그 기저에는 분명히, 분명히 어떤 부러움의 감정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말이지…….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마음을 털어버리려는 데서 나온 걸까? 아무튼 이런 생각의 끝에서 나는 그 수많은 ‘나’들을 제거하고 싶다는 감정을 문득문득 강렬하게 느꼈다. 나의 존재 기반을 충족 받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것을 염탐하고 혐오하는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은 잘 되지 않았다. 나의 결여가 외부 세계와 마찰을 빚을 때마다 계속해서 누군가를 혐오하게 됐다. 아마도 그래서 *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이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의 소중함이 잊힌 것인지, 아니면 아예 상쇄돼 버린 것인지 헷갈렸었다. 여전히 외로운 기운이 감돌지만, 과연 그 아이가 곁에 있다고 이 마음이 채워질까. *의 자리가 이미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들어서, 다시 함께 있게 되더라도 내 마음은 그 아이의 자리만으로 채워질 수 없는 상태가 돼 버린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외로움에 대해 하루 종일 생각하는 날도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큰 충동으로 번지지 않았다. 문자로 내뱉지 않을 때면 그 생각은 쉽게 잊혀 나를 멍한 상태로 몰아냈다. 그럼에도 너무나 견딜 수 없이 우울한 밤도 있었다. 그럴 때면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나를 누르는 것 아래서 허우적댔다. 나는 그게 너무나도 싫고, 유키오가 말하듯 ‘그런 감정은 체조 한 번이면 몰아낼 수 있’는 것처럼 생각됐다. 좀 더 아름다운 것에 대해, 삶을 채워주는 것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가진 게 없어서, 나는 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경계를 휘젓고 돌아다닐 때면 나는 내가 그 무엇도 섬길 수가 없는 사람이 될 것 같아서 쉽게 우울해졌고, 그 사이를 반복하면서 지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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