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6. 10 오후 7:10 꼭 어디 이야기할 데가 없을 때, 아주 가끔 블로그를 찾는 것 같다. 로그인하는데 휴면 계정으로 전환돼 있었다고 해서 놀랐다. 블로그 헤비 유저가 되고 싶다는 꿈도 있었는데, 하여간 작심삼일 어디 가겠나. 개인적인 취미를 함께 하자고 제안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예컨대 '나는 혼자서 이렇게 저렇게 하면서 지내! 너도 같이 할래?' 이런 거. 처음부터 혼자 하는 게 슬픈 일이었다면 사실은 함께 하고 싶은 것이었을 테니까. 대신 처음부터 나의 일이었던 것은 나의 것으로만 두고 싶다. 혼자 있을 때의 나를 그대로 두고 싶다. 스스로 다독여 주어야 할 추한 내 모습을 결코 다른 이에게 내보이고 싶지 않고, 타인과 간절히 함께 하고 싶은 것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
세 달이 훅 지나갔다. 이제 사실상 휴학일기라고 할 것도 없다. 뭔가 감상이나 깨달은 바 같은 것을 좀 써 보려다가, 별로 재미도 감동도 없을 것 같아서 거짓말도 하고 이것저것 섞어서 떠오르는 대로 남기려고 한다. 그리고서 이 글을 마지막으로 휴학일기 카테고리는 마무리를 해야겠다(설마 몇 년 뒤나 언젠가 또 뭔가를 적게 되지는 않겠지? 지금으로선 바라지 않지만 그렇게 된대도 재미있을 것 같다) --- 12시다. 문득 정신을 차려 방 안의 사물을 하나하나 둘러보기 시작했다. 노트북 옆에 있는 그릇에는 식빵 부스러기가 남아있고 그 옆에는 물티슈, 가위, 족집게, 귀이개 같은 것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손에서는 피가 흘러내려 키보드에 찐득하게 들러붙어 있었는데, 아마도 족집게나 손톱깎이 같은 것으로 괜히 ..

0. 페터 한트케의 를 읽었다. 사실 감상평이라고 적기 뭐 할 정도로 이해가 미진한 상태이긴 하지만 그래도 문장으로 적으면서 뭔가를 더 얻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여 몇 줄 적어본다. 1. 역자인 안장혁 교수의 해설을 읽어보면 페터 한트케가 전후 독일의 문학계를 주도하던 트렌드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문학의 존재 근거는 언어 그 자체이지 사물이나 대상에 대한 인식에 있지 않다”라는 언어 내재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하며 당시의 신사실주의적 문학 트렌드나 이른바 참여문학적 문학 풍토와의 결별을 선언했다는 것이다. 그는 러시아 형식주의와 프랑스 구조주의 언어학,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 등에서 사상적 토대를 제공받았다고 한다. 문학 사조들을 개념화해 구분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과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