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일은 내게 의식을 행하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지금 이 말의 무게에 문득 두려움을 느꼈다. 말을 함으로써, 우리는 특정한 인식으로 사태를 떼어 규명한다. 이는 ‘정체를 밝히는 일’이다. 나의 글쓰기가 그런 정체성으로 귀결되면 어떡하나? 그 말의 의미에 앞으로의 나 역시 종속되면 어떡하나? 그런 걱정이 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생각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지 않으면 도태되고 고여서 썩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생각과 글을 쓰는 일이 같은 내용을 지닌 행위인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요즈음 나는 글을 쓸 때가 돼서야 비로소 마음을 갖춰 정갈하게 생각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글을 쓰는 게 나에게 의식적인 행위라는 생각을 했다. 정리해 보자면, 글을 쓰지 않..
다만 나에게 시간은 그저 유유히 흐르고 있었을 따름이다. 언젠가부터 나 자신은 주어진 조건에 따라 자신을 충동질하는 그 무엇의 정체를 밝히려 시간을 사용하는 이들과 구별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간절히 지키고 싶은 게 별로 없었다. 타인의 삶에서 내게 들여 올 것이 없다고 치부하는 독단과 아집이 나를 세상과 분리시키는 지점이 됐다. 처음에는 그저 나의 것이 아니므로 욕심낼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지만, 언젠가 부터는 허황된 욕망을 혐오하고 무시하는 논리로 탈바꿈됐던 것도 같다. 그 기저에는 분명히, 분명히 어떤 부러움의 감정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말이지…….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마음을 털어버리려는 데서 나온 걸까? 아무튼 이런 생각의 끝에서 나는 그 수많은 ‘나’들을 제거하고 싶다는 감..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왔다. 휴학생이 아니었으면 가지 못했을 것이다 뭐 그런 건 아니지만, 일을 미루고 있다는 죄책감이나 다른 것들에 대한 의무감, 도피 심리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떠났던 것 같다. 뭔가에 치이는 느낌이 많이 사라졌다. 이는 확실히 휴학을 통해 가장 크게 변화된 조건인 것 같다. 여행을 떠나는 동안 이것저것 생각이 나는 대로 고민도 하고 가만히 나 자신을 응시하기도 하고 그랬다. 가면 갈수록 사람들을 더 많이 관찰하게 되는 것 같다. 반드시 목적성을 띠고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 나 자신을 알기 위해서 그러는 것 같다. 그 다음에는?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나에게 주기 위해서? 그런데 이런 과정에서 어떤 혐오의 감정이 나에게 더해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와 타인을 구별하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