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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에쿠우스>

서경대학교 공연예술센터 스콘1관

191108 (금) 20:00

 

ㅣ석준연극 <에쿠우스> 포스터

연극 <에쿠우스>. 예전부터  이 공연에 대한 찬사를 많이 들어와서 기대를 하고 갔었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내 취향은 아니었다. 배우들의 연기, '말'의 표현 등은 볼만한 것 같다. 하지만 아주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이 소재에 대한 접근성이랄까 주변 감각이랄까 아무튼 그런 것이 익숙치 않은 문화권이라서 특히나 비종교인이라면 그다지 몰입도가 높지 않았을 것 같다. 그리고 알런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어떤 감각으로 둘러싸여 있었는지를 무대 공간을 통해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꽤 큰 비중을 차지하는 듯한 가정환경에 대한 설명이 전부 어머니 아버지의 대화 속에서만 드러났다는 것이 이 연극의 미흡한 점이 아니었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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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에너지는 90%가 알런에게, 나머지 10%가 마틴에게 가 있다. 다른 인물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알런의 세계를 보조해주는 역할로 등장한다. 그래서 나는 전반적으로 극이 좀 단조롭게 느껴졌다. 보통 비슷한 소재로 영화를 만들 때는 똑같이 인물 구성은 단순하지만 주인공이 느끼는 세계의 감각, 유대감에 의지하고 일종의 종교성을 띠게 되는 행위의 의미들이 그 자체로서 굉장히 풍부하게 묘사되는데 연극이라는 시공간적 한계성 때문인지 연출의 미흡함인지 그런 게 좀 덜 느껴졌다. 해당 요소들은 거의 알런의 대사 또는 말을 쓰다듬는 행위 등에서 드러난다. 다만 이 연극의 하이라이트라고도 할 법한 두 번의 격한 액션에서 광기에 휩싸인 의식이 행해지는데 이 부분은 정서를 전달하는 데 효과적인 장치이기도 하고 또 연극에서만 라이브로 볼 수 있는 특색이기도 해서 좋았다. 특히 후반부에서 왜 알런이 말의 '눈'을 찌르는지 이해시키는 과정이 아마 종교적 광기, 신성과 이를 범(犯)하는 행위에 도사리고 있는 내밀한 감정이 잘 드러난다. 그렇지만 어머니의 종교적 열성과 알런에게 그것이 말의 우상으로 연결되는 과정은 다소 매끄럽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연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시각적 효과인데, 그와 관련해서 관객에게 공간감을 줄 수 있는 대상물이 없었다. 아버지가 엄하다는 것 역시 TV를 못 보게 했다 그 정도로만 표현이 됐던 거 같은데(뭔가 더 있었을 텐데 내가 대사를 다 못 들은 것일 수도 있다) 이 연극의 영화 버전이나 희곡을 읽지 않은 사람이 연극만 보고서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기는 어려웠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런 점이 아쉬웠던 거 같다. 

 

말. 말의 표현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이런 식으로 특정한 동물의 육감을 관능적으로 표현한 작품은 흔치 않다. 말을 실제로 본 적이 많이 없으니까 잘 모르겠지만, 갈색의 기름진 피부와 가죽띠, 갈기, 푸르르르 하는 소리,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임! 이런 요소들이 어우러져 '말'을 탄생시켰다. 고귀하고 숭고한 것, 발 밑에 엎드리게 하면서도 피부를 갈라 범하고 싶게 만드는 것... 사실 내가 종교인이 아니라서 그 은밀한 감정의 작동방식에 대해서는 더 이상 자세하게 말하기 힘드나 아무튼 '난 너의 것이고 넌 나의 것'이라는 문구에서도 드러나듯 일체감을 형성시키며 감정을 고양시키는 그 대상이 잘 표현돼있다. 알런의 내면을 잘 탐구해서 극적으로 소화했다는 이야기. 그런 점에서 소기의 성과가 있는 작품이고, 심정에 공감하는 정도에 따라서는 인생작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만 나의 경우에는 이런 식으로 한 인물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작품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편이기도 하고(그런 경우에 보편성에 대한 깊은 탐구 없이 이를 소거시키고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으니), 플롯이 너무 단조롭다는 점, 연출상의 미흡한 점 등 때문에 그렇게까지 와닿지는 않았다. 

 

시간을 거의 딱 맞춰 들어갔어서 공연장 외부 사진은 못 찍었다. 커튼콜도ㅠㅠㅠ 왜인지 아무도 찍질 않아서 찍으면 안 된다고 했었나 긴가민가 하다가 결국 그냥 나왔다. 서경대학교 공연예술센터 처음 가봤는데, 공연장은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시설이 좋은 편인 거 같다. 무대는 그렇게 넓지 않았던 것 같지만, 단차가 있는 거 치곤 객석이랑 거리가 가까워서 얼굴도 잘 보였고 대사 전달도 잘 됐다. 무대 장치는 그냥 쏘쏘. 특색 있는 무대는 아니다. 연출에 힘을 쏟는 것도 씬마다 밸런스가 좀 안 맞았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고. 연기는 괜찮았던 것 같다. 이석준, 오승훈으로 봤던 거 같은데 다른 관람평에서도 연기 훌륭했다는 댓글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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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이 너무 짠 건 평가의 의미도 있지만 그냥 내 취향이 아니라서. 사실 그래서 영화를 보지도, 희곡집을 더 찾아보지도 않았다. 

 

좀 무거운 연극을 보고났더니 유쾌하고 재미있는 작품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좀 든다. 코미디 이런 건 또 코드가 안 맞아서, 그냥 대사를 찰지게 하는 연극. 영화나 드라마가 나을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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